나 뿐만 아니라 너도 기억해주길…

버스 안, 내 옆자리에 할머니 한분이 앉으셨다.
70세는 훌쩍 넘어보이는 할머니의 팔에는 검버섯이 앉아있었고
얼굴에는
나이수만큼의 깊은 주름과 엷은 주름들이 자리해있었다.

본적 없는 이 낯선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 아이가 기억할 우리엄마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나이든 할머니의 모습이겠구나.’

짙은 쌍커풀이 있는 큰 눈,
여리여리하게 가느다란 팔과 다리.
탤런트 김혜선씨를 닮았다고 하면
“어우 얘는~”
하며 손사래를 치는 우리엄마.

여자여자하면서도
내 은사님이 “혹시 교장선생님 아니신가?” 물으실 정도로
강단있게 생긴 우리 엄마.

하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나
할머니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면
우리엄마의 이렇게 예쁜 모습은
세월이라는 힘에 살짝 지워져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작은 다짐을 하나 했다.

한국에 있는 지금,
엄마와의 사진을 많이 찍어 두자고.
사진이 담을 수 있는것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우리 엄마가 이만큼 예쁘다는 사실을
나만이 아니라 내 아이도 기억했으면 한다.

caption: 아빠 유전자의 횡포(?!)로 인해 엄마의 큰 눈과 가느다란 다리는 내게서 발현되지 못했다. 아빠도 인정한다. 우리아빠 유전자가 잘못했다 ㅋㅋㅋ

엄마의 선택

오랜만에 참 찰진 한국 드라마 한 편을 봤다.

2부작으로 구성된 ‘엄마의 선택’.

제목은 엄마의 ‘선택’이었지만
진욱이 엄마 자신이 ‘선택’한 것은 없었다.

성폭행을 당한 학생에게 병원에 가자고 설득할 때나,
잘못이 3이면 3만큼 벌을 받고, 10이면 10만큼 벌을 받자고 할 때나,
아들을 위해 위증을 할 때나,
“검사님이라면 양심에 따라 대답할 수 있으시겠어요?” 라고 반문 할 때나,
엄마는 엄마이기에 그렇게 행동했다.

검색해 보니 이 드라마에 대해 대부분의 기사들은
‘삐뚤어진 모정’에 대한 드라마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가을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 같았던
그녀들에게
가족들과 사회는
‘엄마’라는 갑옷 하나 입혀 놓고
슈퍼우먼에 정의의 사도까지 바라는건 아닌지,
엄마라는 이름에 몇 톤짜리 책임들을 매어놓고는
정작 엄마가 한 일에 우리는 ‘선택’이라 이름지어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 그런 드라마였다.

오랜만에 본, 잘 만든 한국 드라마 한 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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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Botanical Garden 에서 엄마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