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ing as an emotional process?

I also read Descartes’ Error, by the neuroscientists Antonio Damasio. Damasio had noticed an unusual latter of symptoms in patients who had suffered brain damage to a specific part of the brain—the ventromedial (i.e., bottom-middle) prefrontal cortex (abbreviated vmPFC; it’s the region just behind and above the bridge of the nose). Their emotionality dropped nearly to zero. They could look at the most joyous or gruesome photographs and feel nothing. They retained full knowledge of what was right and wrong, and they showed no deficits in IQ. They even scored well on Kohlberg’s tests of moral reasoning. Yet when it came to making decisions in their personal lives and at work, they made foolish decisions or no decisions at all. They alienated their families and their employers, and their lives fell apart.

Damasio’s interpretation was that gut feelings and bodily reactions were necessary to think rationally, and that one job of the vmPFC was to integrate those gut feelings into a person’s conscious deliberations… The head can’t even do head stuff without the heart… When the master (passions) drops dead, the servant (reasoning) has neither the ability nor the desire to keep the estate running.

(p. 34 of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by Jonathan Haidt )

I believe that one of the things that experts and scholars should actively try to avoid is being narrow-minded. Mark Twain has appropriately put it; “to a man with a hammer, everything looks like a nail.” Just because we are familiar with the subjects and tools and we are also required to go deep, rather than wide, in our own fields, we often forget that we are sometimes confined by the boundary of our own making. Reading The Righteous Mind, which talks about morality being based on emotion, I stepped back and started to wonder whether I mistook the cognitive part of learning for its entirety. Isn’t learning also an emotional process? Current learning assessment tools and rubrics are designed to measure how much students learned; educators rarely focus on how much students enjoy learning. Self-assessment questionnaires are mostly about students’ confidence on the lecture contents and/or cognitive abilities, not about their feeling. Maybe we educators should ponder how to integrate emotional boost into learning.

Here I am quoting again. “The head can’t even do head stuff without the heart.”



“Learning is social”


Cathy Davidson, who was invited to the campus to talk about higher education, said it was a great experience to run a MOOC course with the enrollment of ~18,000 students from all over the world. She also mentioned that her teaching assistants were exhausted from communicating with students 24/7. “Learning is social and interactive,” she added.

Acquisition of information could happen in solitary, but learning requires interactions for two reasons. First, in order to explain something to somebody, the speaker needs to break the information into bite-size pieces, fill any missing links between concepts, come up with analogies, make a story line, etc. These active mental engagement, largely overlooked in education for a long time, is what converts information to knowledge. Second, having a listener means that somebody cares about you—your understanding, thoughts or opinions on something. It’s an implicit, simple but warm gesture that makes your learning relevant and, more importantly, fun.

An effective teacher evokes an image of an eloquent speaker whose clear explanation, charisma and charm overflow from the stage and grab students’ attention. Nonetheless, in light of the importance of human interaction in learning, I wonder if that image may not be correct. As a professor, I should perhaps strive to be an active listener—someone who finds holes in students’ logic and/or asks smart questions that challenge the student to look at the information from different angles.


Image credit: “Listen” by Steven Shorrock is licensed under CC BY-NC-SA 2.0.

근자열 원자래

“공자는 인이란 ‘근자열 원자래’라고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습니다” (p92, “담론” 신영복저).

어질다는 의미를 이렇게 간략하게, 마음에 와닿게 정의하다니. 신영복 선생님의 책 “담론”을 읽다가 내 눈이 위 문장의 끝에 머무는 순간, 그 감동은 입안에 들어온 사탕의 민트향이 몸에 사아~ 퍼지고 내 몸 밖으로 잔잔하게 번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인(仁)”이라는 내면의 향기라는게 이런것인가보다. 강하지 않고 은은해서 곁에 더 있고 싶게 만들고, 강하지는 않아도 오래 남아 다시 찾아오게 하는. 처음엔 민트향처럼 느껴진 그 감동에 갑자기 무게가 실려 나를 짓누른다. 아… 너무나도 어려운,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인(仁)이구나.

좀 가벼워 지자 하는 마음에 목표를 수정해 본다. 근자열 원자래를 실천하지는 못해도, 이 은은한 향을 띈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자. 멀리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지는 못해도 내가 마음 준, 하지만 지금은 멀리 있는 이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자. 가까이 있는 이들이 맘 편하게 내 곁에서 쉴 수 있게 하지는 못해도, 타인이 보낸 배려에 밝게 웃으며 고마운 마음을 꼭 표현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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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본질

fountain-pen-1851096_960_720“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장력의 차이 보다는 콘텐츠의 차이라고 생각해.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 내용을 썼는지가 관건이지. 게다가 스타일의 경우 독자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고.”

글쓰기 연습을 어떻게 하냐는 내 질문에, 친구이자 내 과학동아 칼럼의 에디터 영혜는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읽은 책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지음, 메멘토)” 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23).

“글이란 또 다른 생각(글)을 불러오는 대화와 소통 수단이어야 한다. 울림이 없는 글은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중얼중얼 설명하면서 자기부터 설득하는 오붓한 시간을 갖자” (129).

아… 내 질문이 잘못되었구나. 어떻게 글을 쓰느냐가 아니라 무슨 글을 쓰느냐를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연습은 글로 풀어낼 소재를 깊고 풍족하게 하는 것. 즉, 많이 읽고 많이 듣고 그리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구나…

실력이 좋은 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고 있는 에디터님으로 부터 오늘 하나 더 배웠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해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책 <정희진처럼 읽기>의 저자 정희진은 위의 시를 ‘간절한 외로움’이라고 소개했다. “읽고 또 읽노라면 외로움이 몸에 가득 차서 손목이라도 그어 몸 안의 외로움을 빼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시는 내겐 수줍은 이의 사랑표현으로 다가왔다. 상대의 ‘여보세요’ 한마디에 순간 얼어붙을 것을 알기에 그사람이 없을 때 맘 놓고 전화를 한다. 대화는 없다. 하지만 목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 그래서 수화기를 드는 설렘, 반복되는 신호음에 맞추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시에 가득하다.

빈 방을 채우고도 남아 그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 쌓여 있을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동안 수줍은 화자는 듣는이 없는 이야기를 모두 속삭였으리라. 전달되지 않아서, ‘부재중 전화 7건’ 이 찍히지 않아서, 그래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해서 간절한 외로움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정말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를 이렇게 품을 여유조차 없을 테니까.

<정희진처럼 읽기>에 소개된 참 멋진 시가 하나 더 있어 아래에 붙인다.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반바지, 통통과 튼튼사이.

반바지가 뭐 그리 대수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반바지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최근까지 나는 운동할 때를 빼놓고는 더운 한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면 “거의 매일 실험실에 가는데 실험실에서는 긴 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반바지를 안사게 되더라고요”라고 둘러댔다. 어릴적부터 마른 체형과는 거리가 있었던 내 몸은 내게 컴플렉스였고, 가뜩이나 body image 에 자신 없는 나는 (“I do have a distorted body image.” 라고 인정해버려 주위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30도를 훌쩍 넘는 날에도 긴바지를 입고 밖을 나섰다.

올해 초, 출퇴근시 항상 듣는 팟 캐스트에서 “Dear Ijeawele, or A Feminist Manifesto in Fifteen Suggestions” 라는 책을 쓴 작가 Chimamanda Ngozi Adichie 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녀의 15가지 제안 중 하나:

“Suggestion 10: Be deliberate about how you engage with her about her appearance. Encourage her participation in sports. Teach her to be physically active. I think this is important not only because of the obvious health benefits but because it can help with all the body-image insecurities that the world thrusts on girls.”

몸이란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생활하는데에 필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운동만한게 또 있을까? 팟 캐스트를 들은 이후 테니스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다리에 눈길이 갔다.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통통하고 튼튼한 다리. 스키니 진을 입지는 못하지만 21km를 뛰어내는 다리이다. TV속 연예인들의 다리는 아니지만 축구, 농구, 테니스… 큰공, 작은공 구별 않고 공이란 공은 모두 쫓아가는 그런 다리이다.

쭈욱 뻗은 그녀들의 다리가 여전히 부럽다 (한국 여인들은 도대체 뭐먹고 사나요?).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아주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겠다. “심미성: 80, 사용성: 20” 이 아닌, “심미성: 20, 사용성: 80” 이라는 평가지를 들고 나는 묻는다. 내 다리는 뭐하는 다리? 후자의 평가지가 썩 나쁘지는 않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나서는 길. 낮기온이 33도까지 치솟는다는 일기예보에 아무렇지 않게 반바지를 입는다. 여전히 민소매 티셔츠를 입으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 어찌 그리 작은 양의 천을 가지고 만들었나 싶은 비키니는 평생 입을 생각을 안할 듯 하다. 그래도 반바지는 입기 시작했다.

맨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꽤나 시원하다.

Book Review: Darkness Visible — A memoir of madness

Loss in all of its manifestations is the touchstone of depression—in the progress of the disease and, most likely, in its origin… The loss of self-esteem is a celebrated symptom, and my own sense of self had all but disappeared, along with any self-reliance. This loss can quickly degenerate into dependence, and from dependence into infantile dread. One dreads the loss of all things, all people close and dear. There is an acute fear of abandonment. Being alone in the house, even for a moment, caused me exquisite panic and trepidation (p 57 of Darkness Visible by William Styron).

Loss of any kind leads to pain. However, our body and mind react to the loss differently.  A paper cut stimulates our existing cells to proliferate and repair the damage. It’s our body’s intrinsic healing process. Our mind, unfortunately, is exempt from this amazing ability. When we lose “cells” in our heart—it could be our self-esteem, our beloved ones, etc—we turn to people around us and lean on them. Please don’t get me wrong. It is a blessing to be able to comfort someone whose heart is broken. However, this dependence comes with the expiration date. Once it is passed, the dependency occupies the space in which our own “cells” should have filled and then turn to our own agency and engulfs it. Unlike the physical wound healing process, it takes an extra effort and active pursuit to get our own mind cells reappear and reconstitute what has been lost before dependency stays put.

I guess resilience is a quantifiable quality—the rate of which our own “mind cells” (or whoever the smallest structural and functional unit of our mind is called) proliferate to heal the wound in our heart.

For those of you who are interested in related subjects, I recommend this TED talk about emotional hygiene.

More quotes from Darkness Invisible are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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