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본질

fountain-pen-1851096_960_720“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장력의 차이 보다는 콘텐츠의 차이라고 생각해.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 내용을 썼는지가 관건이지. 게다가 스타일의 경우 독자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고.”

글쓰기 연습을 어떻게 하냐는 내 질문에, 친구이자 내 과학동아 칼럼의 에디터 영혜는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읽은 책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지음, 메멘토)” 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23).

“글이란 또 다른 생각(글)을 불러오는 대화와 소통 수단이어야 한다. 울림이 없는 글은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중얼중얼 설명하면서 자기부터 설득하는 오붓한 시간을 갖자” (129).

아… 내 질문이 잘못되었구나. 어떻게 글을 쓰느냐가 아니라 무슨 글을 쓰느냐를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연습은 글로 풀어낼 소재를 깊고 풍족하게 하는 것. 즉, 많이 읽고 많이 듣고 그리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구나…

실력이 좋은 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고 있는 에디터님으로 부터 오늘 하나 더 배웠다.

나 뿐만 아니라 너도 기억해주길…

버스 안, 내 옆자리에 할머니 한분이 앉으셨다.
70세는 훌쩍 넘어보이는 할머니의 팔에는 검버섯이 앉아있었고
얼굴에는
나이수만큼의 깊은 주름과 엷은 주름들이 자리해있었다.

본적 없는 이 낯선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 아이가 기억할 우리엄마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나이든 할머니의 모습이겠구나.’

짙은 쌍커풀이 있는 큰 눈,
여리여리하게 가느다란 팔과 다리.
탤런트 김혜선씨를 닮았다고 하면
“어우 얘는~”
하며 손사래를 치는 우리엄마.

여자여자하면서도
내 은사님이 “혹시 교장선생님 아니신가?” 물으실 정도로
강단있게 생긴 우리 엄마.

하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나
할머니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면
우리엄마의 이렇게 예쁜 모습은
세월이라는 힘에 살짝 지워져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작은 다짐을 하나 했다.

한국에 있는 지금,
엄마와의 사진을 많이 찍어 두자고.
사진이 담을 수 있는것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우리 엄마가 이만큼 예쁘다는 사실을
나만이 아니라 내 아이도 기억했으면 한다.

caption: 아빠 유전자의 횡포(?!)로 인해 엄마의 큰 눈과 가느다란 다리는 내게서 발현되지 못했다. 아빠도 인정한다. 우리아빠 유전자가 잘못했다 ㅋㅋㅋ

쪼그라든 내 열정을 그들이 품어주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의 매력은 악보위에 적힌 2차원의 음악이 3차원으로 바뀌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다는 것이다.

뭐랄까… 음악이 켜켜이 쌓이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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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기 한달전인 5월 초, 지영선배를 통해 알게된 대덕오케스트라에 지원하기 위해 오디션 영상을 만들면서 두려움이 앞섰다. 또다시 실패 할 것에 대한, 그래서 다시 내게 실망할 것에 대한 두려움. 2014년 가을이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에 주눅이 든 나는 Harvard Dudley Orchestra를 1년만 하고 중간에 그만 두었다. 무책임한 행동이였다. 하지만 공연때 민폐를 끼치는 것 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었다.

그리고는 1년전 DC로 이사와서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았고, 심사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떤 나는 오디션장을 떠나기 무섭게 ‘불합격’을 직감했다. 그리고는 역시나 불합격통지를 받았다.

이런데도 대덕오케스트라에 지원한 이유는… 짧은 오케스트라 활동 중 느낀 ‘합주’의 묘미를 다시한번 맛보고 싶었다. 내가 동경하는 ‘클래식 연주자’들과 함께 한다는 그 황홀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DC 오디션에서의 부끄러운 연주로 인해 콩알에서 좁쌀크기로 더 작아진 자신감에 자극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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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보다는 열정을 높이 사주신 악장님 덕분일까? 그렇게 비전공자로서, 대덕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서, 2017년 7월 8일 대전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다.비올라 파트의 가장 뒤쪽. 관객석에 앉은 엄마 아빠가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자리에 있었지만 연주하는 내내 내게는 악장님, 수석님들, 전공 선생님들과 똑같은 조명이 떨어졌다.

함께해준 지영선배, 오케스트라 단원 선생님들, 장마비가 무섭게 내리는데에도 공연장을 찾아주신 은사님과 지인들께 감사한 시간이였다. 공연 팜플렛을 받자마자 자랑스레 내이름에 빨간펜으로 밑줄을 쭉 그은 우리 아빠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오케스트라 연습이 없는 월요일 저녁. 이 허전한 마음에 욕심이 마구 채워진다. 다음번에는 비올라 단원 선생님들의 연주에 내 소리를 제대로 얹고 싶다는 욕심. 연주하면서도 지휘자님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욕심. 더 따듯한, 좋은 소리를 내고 싶은 욕심. 그리고 앞으로도 무슨일이든 같은 열정을 품고 사는, 뜨거운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픈 욕심.

반바지, 통통과 튼튼사이.

반바지가 뭐 그리 대수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반바지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최근까지 나는 운동할 때를 빼놓고는 더운 한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면 “거의 매일 실험실에 가는데 실험실에서는 긴 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반바지를 안사게 되더라고요”라고 둘러댔다. 어릴적부터 마른 체형과는 거리가 있었던 내 몸은 내게 컴플렉스였고, 가뜩이나 body image 에 자신 없는 나는 (“I do have a distorted body image.” 라고 인정해버려 주위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30도를 훌쩍 넘는 날에도 긴바지를 입고 밖을 나섰다.

올해 초, 출퇴근시 항상 듣는 팟 캐스트에서 “Dear Ijeawele, or A Feminist Manifesto in Fifteen Suggestions” 라는 책을 쓴 작가 Chimamanda Ngozi Adichie 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녀의 15가지 제안 중 하나:

“Suggestion 10: Be deliberate about how you engage with her about her appearance. Encourage her participation in sports. Teach her to be physically active. I think this is important not only because of the obvious health benefits but because it can help with all the body-image insecurities that the world thrusts on girls.”

몸이란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생활하는데에 필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운동만한게 또 있을까? 팟 캐스트를 들은 이후 테니스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다리에 눈길이 갔다.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통통하고 튼튼한 다리. 스키니 진을 입지는 못하지만 21km를 뛰어내는 다리이다. TV속 연예인들의 다리는 아니지만 축구, 농구, 테니스… 큰공, 작은공 구별 않고 공이란 공은 모두 쫓아가는 그런 다리이다.

쭈욱 뻗은 그녀들의 다리가 여전히 부럽다 (한국 여인들은 도대체 뭐먹고 사나요?).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아주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겠다. “심미성: 80, 사용성: 20” 이 아닌, “심미성: 20, 사용성: 80” 이라는 평가지를 들고 나는 묻는다. 내 다리는 뭐하는 다리? 후자의 평가지가 썩 나쁘지는 않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나서는 길. 낮기온이 33도까지 치솟는다는 일기예보에 아무렇지 않게 반바지를 입는다. 여전히 민소매 티셔츠를 입으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 어찌 그리 작은 양의 천을 가지고 만들었나 싶은 비키니는 평생 입을 생각을 안할 듯 하다. 그래도 반바지는 입기 시작했다.

맨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꽤나 시원하다.

무궁화호

IMG_2334무궁화호는 어릴적 ‘칙칙폭폭’에 어울리는 기차이다.

참 자주도 선다. 좀 간다 싶으면 다음역이란다. “우리 기차, 이번 역은…” 하고 시작하는 안내 방송이 마치 “서울 가는 이 하나 더 있응께 쪼매 돌아 가유. 다들 안바쁘제?” 하는 것 같다.

같이 탄 사람들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 이미 신발을 좌석 앞쪽에 벗어 놓고는 긴 바지를 접어 올리셨다. “응, 막내야. 기차 잘 탔어. 걱정말어.” “긍께 잊지 말고 택배 잘 받아놔유.” 몸은 기차에 실었지만 마음은 집에 놓고 오셨다.

가방 속 iPad 와 Apple pencil 은 꺼낼 생각도 안했다. 대신 수첩에 연필로 끄적인다.

난 KTX 를 타는 여유보다 무궁화호를 타는 여유가 더 좋다.

 

I’m learning in my class too!

teacher-407360_1920When people talk about the effects of active learning, it’s all about students; students are motivated to learn, their ownership increases, they retain knowledge longer, etc. One thing I noticed is that in the active learning classroom, instructors also learn and intellectually grow just as students do.

When the instructor steps aside a little bit to leave a room for students so that they could follow their interests and synthesize information on their own, the instructor acquires new information relevant to the course subject from students’ work. Moreover, while observing how students develop their interest and improve information fluency, the instructor could reassess his/her teaching philosophy and grows as an educator.

After all, active learning is happening to EVERYONE in the classroom. 

An unwelcome guest I invited

Every time I finish my lecture, there is always this lingering feeling that I didn’t do a good job. I was repetitive, I rambled a lot, my sentences didn’t make sense, I didn’t answer students’ questions right, I was too quick, I didn’t look at the audience often, etc.

It was me who went into the lecture room. In an hour, trudging out of it is someone I don’t like, a loser who is beaten by what she wants be, where she wants to be.

Some aspects of teaching are in fact incompatible with my nature. I don’t enjoy public speaking; I like one-on-one meetings. I like asking questions; I don’t feel comfortable with saying “I know this.” I admire people who ask thoughtful and interesting questions such as Charlie Rose , Terry Gross, Tom Ashbrook and Krista Tippett more than people who provide or seek out the answers.

Then, why did I want to be a teacher in the first place?

Because I am genuinely curious about people. I like listening to people and form relationships with them–not the kind of relationship you establish by sending out a friend request, but the one that requires face-to-face interactions and demands attention and care. As a teacher, I am encouraged and appreciated to be curious about people. I get paid to help students realize how fun learning is and how much potential they have. It is a blessing to be part of someone’s intellectual growth.  It is a privilege to be in the position where I can offer someone the opportunity or help him/her get the opportunity that could be the very starting point of his/her big dream.

Breathing in and breathing out. I’m trying to kick out this unwelcome guest I invited. A ghost of my making. Dissatisfaction with my performance has certainly helped me grow, but before it becomes too big and engulfs me, I better learn how to face a room for improvement with pride and high spirit.

I’m still learning and growing, surprisingly and thankfully.

p.s. Thomas Aquinas allegedly said, “Sorrow can be alleviated by good sleep, a bath and a glass of wine.” So, here we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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