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전화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해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책 <정희진처럼 읽기>의 저자 정희진은 위의 시를 ‘간절한 외로움’이라고 소개했다. “읽고 또 읽노라면 외로움이 몸에 가득 차서 손목이라도 그어 몸 안의 외로움을 빼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시는 내겐 수줍은 이의 사랑표현으로 다가왔다. 상대의 ‘여보세요’ 한마디에 순간 얼어붙을 것을 알기에 그사람이 없을 때 맘 놓고 전화를 한다. 대화는 없다. 하지만 목소리가 듣고 싶은 마음, 그래서 수화기를 드는 설렘, 반복되는 신호음에 맞추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시에 가득하다.

빈 방을 채우고도 남아 그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 쌓여 있을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동안 수줍은 화자는 듣는이 없는 이야기를 모두 속삭였으리라. 전달되지 않아서, ‘부재중 전화 7건’ 이 찍히지 않아서, 그래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해서 간절한 외로움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정말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를 이렇게 품을 여유조차 없을 테니까.

<정희진처럼 읽기>에 소개된 참 멋진 시가 하나 더 있어 아래에 붙인다.

사랑법 첫째

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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